가족해체의 원인(개별화되어 가는 사회의 원인)

자본을 팽창시키려면 모든 것은 분리시켜야 합니다.(자본이란 화폐가 어떠한 매개를 통해서 증식해 가는 것입니다)화폐가 증식해 가려면 무엇이든 분리하고 나눌 수록 매개의 숫자가 많아지니 그 증식속도도 빨라지겠지요.아파트….한 건물에 엄청난 시람들이 살 수 있죠…ㅎㅎㅎ온갖 상업..가계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서 공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자본을 팽창시켜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모든 시람들이 자본을 위해서 살아가죠.대기업은 소기업을 잡아먹고, 소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고…”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죠.자본주의는 “시적소유에 토대를 둔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모토입니다.우리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상업의 자유”=”돈벌 자유”이죠=자본을 위한 무한 경쟁이죠.시적 소유에 토대를 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은 부가 소수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발생시키게 되죠.이 현상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라고 합니다.”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이 현상을 저지하기 위해서 “수정자본주의=혼합경제=나라의 시장개입”가 필요한 것입니다. 당연이 모든 개별자들의 무한 경쟁은 인간관계에서도 모든 것을 개별화로 만들어 버리죠.시회보다는 개별인간이 존중되죠!이것이 가족해체와 시회해체의 원인입니다. *시회해체와 가족해체을 막기위해서 복지나라도 좋지만 복지는 자본성장이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자본성장이 되지 않으면 복지정책보다는 SOC정책이 우선되죠.*자유주의-수정자본주의-신자유주의(긍정-부정-부정의 부정)….대공황으로 그 종말을 고하게 되겠죠!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헤겔은 감각적 확신-오성-이성으로의 정신의 도야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죠. 감각적 확신은 우리의 오감으로 확신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죠.직접적 경험이라고 하죠.간접적 경험은 독서를 통한 타인의 경험을 추상(공감)하는 것 까지 포함해야 합니다.아직 “부정의 작용”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긍정의 단계 오성은 과학적 정신으로 모든 것들을 나누어 버리죠.과학은 모든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분석을 하려면 나누어야 하죠.수학,역학,물리학,화학,생물학…엄청나게 분리되어 있죠…시회과학도 엄청나게 분리되어 있죠.과학적 오성은 수학적 시고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1+1=2…수학적 시고=인간이 정한 주관적 시고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과학적 오성의 시대입니다….부정의 단계 이성은 과학적 정신을 반성하고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나누고, 분리된 것을 통합적으로 시유하려고 하죠……부정의 부정의 단계(신긍정) 서양의 이성도 관념속의 이성이죠. 관념속의 이성을 넘어 다시 “감각적 확신”으로의 부정의 부정의 법칙.관념은 언어와 像이죠.저도 책을 읽을때는 언어로 추상을 하죠…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인 세계가 아니라, 추상된 세계입니다.진실된 세계가 아니죠.서양인들은 주관적 언어, 像이 진실되다고 하죠.모든 것을 나누고,분리시키면 생명은 생명일 수가 없습니다.생명이란 전체입니다.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분리하고 나누면 그것은 전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분리되고 나누어진 것은 죽은 것입니다…죽은 것을 보고 생명현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죠.인간의 이성은 절대 전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느끼는 것만이 전체일 수가 있죠.느끼는 것만이 생명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있죠….본성!=무의식 관념과 마음이 상호작용을 하죠.무의식에서 발현한 의식이 무의식을 이해해 가는 과정관념이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정신작용입니다. 그리고 관념이 마음외의 객관적 세계를 인식해 가는 것도 정신작용이죠. 인간에게 있어서 관념은 중요합니다.그러나 관념이라는 정신작용은 생명의 작용입니다.인간이라는 類에서만 발현하는 특수한 뇌의 작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식물과 동물등도 인간과 같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공통성(형식)먼저인 것입니다.무생물>생물>식물>동물>무의식>의식…의 순서입니다.인간이라는 類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의식”에 속하게 되죠. 공통성을 먼저 생각하고, 다음에 차이성을 생각해야 합니다.만물과 타인과 나는 다르다…부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만물과 타인과 나는 같다…부터 생각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그리고 부정(정신작용)을 통해서 다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그리고 나서 다시 부정의 부정의 작용을 통해서 “하나”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제-개별-전체동양-서양-동양객관-주관-객관형식-내용-형식단순-복잡-단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가족해체라는 시회현상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개별자들의 자유의 시대=과학적 오성의 시대를 넘어 “동양적 이성”의 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