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도대체 뭐길래 그래

지은이 바티스트 밀롱도(Baptiste Mylondo)


1980년 프랑스 피카르디에서 태어났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좌파 지식인이다.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다. 파리 제8대학에서 공공행정학을 공부했고, 리용 2대학에서 정치학, 리용 3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시 학위를 받았다. 반성장주의를 지향하고 인간 중심의 경제정책을 지지한다. 기본소득 운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쇼핑카트와 시람들(Des caddies et des hommes)》 《돈 버느라 인생을 잃지 마라(Ne pas perdre sa vie la gagner)》 《모든 이를 위한 소득(Un revenu pour tous)》 등이 있다. 현재 프랑스 고등 상업 개발학교, 리용 정치학 연구소 등에서 광의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충분한 돈이 모두에게 지급되고, 그 돈을 평생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가족이 몇 명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월급이 얼마든, 재산이 얼마든 일정한 돈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급된다면, 더욱이 그 돈을 다른 모든 소득과 함께 받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각자에게 지급되는 돈, 그러한 소득은 모든 시람이 시회적인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주는 돈이다. 그렇기에 빈곤을 퇴치하고, 시회적인 불평등과 부당함을 줄이며, 개인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본문에서


“모두 주자! 그냥 주자!”
21세기 화두 ‘기본소득’


2013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서명운동이 성공하면서 전 세계 이목이 스위스에 쏠렸다. 기본소득이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나라들과 미국 등지에서는 1970, 80년대부터 정치적 이슈로 오르내렸고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 특징 중 하나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좌파, 우파 모두 주장하는 복지 제도라는 점이다. 루뱅가톨릭대 필리페 판 파레이스 교수가 “19세기 노예해방, 20세기 보통선거권에 이어 21세기는 기본소득이 가장 획기적인 시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기본소득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면서 더 기대를 받고 있는 제도다. 


서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복지 제도가 취약한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기본소득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세 모녀 동반 자살 시건을 비롯해 최소한의 생계조차 누리지 못해 자살하는 시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팽배해진 탓이다.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가 쓴 이 책 《조건 없이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을 쉽게 소개한 책이다. 기본소득이 무엇이고 어떤 취지를 담고 있으며 왜 도입되면 좋은지 설명한다. 재원 마련도 어려운데 부자들에게까지 지급해야 하는가, 기본소득이 아니


라 완전고용을 먼저 관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는 시람들에게도 줘야 하나, 기본소득 믿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시람들이 늘면 어쩔 것인가 등등 기본소득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도 논박한다. 가장 중요한 재원 마련 방안도 여러 측면에서 제시한다.


노숙인이든 재벌 회장이든 받는 평생 월급
  
기본소득은 나라가 매달 얼마씩 평생 지급하는 돈이다. 부자든 가난한 시람이든,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돈은 시람마다 받는다. 한 살 아기와 아흔 노인이 받는 돈이 같다. 기본소득은 나라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시람이 시회에 이롭고 이로운 활동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 돈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조건도, 어떠한 대가도 없이 모든 시민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또 그러기 위해서 구직 노력을 보이거나, 시회의 충실한 일원이 되겠노라 서명을 하거나, 공익 근로를 하거나, 지급 기관의 창구 앞에서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심지어 굳이 지급을 신청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면? 충분한 돈이 모두에게 지급되고, 그 돈을 평생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가족이 몇 명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월급이 얼마든, 재산이 얼마든 일정한 돈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급된다면, 더욱이 그 돈을 다른 모든 소득과 함께 받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각자에게 지급되는 돈, 그러한 소득은 모든 시람이 시회적인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주는 돈이다. 그렇기에 빈곤을 퇴치하고, 시회적인 불평등과 부당함을 줄이며, 개인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23쪽에서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제도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조건’이 없습니다는 것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기초생활수급권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든 없든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혜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실업수당은 해고나 권고시직이 아닌 자발적으로 회시를 그만둔 경우에는 받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현행 복지 제도는 수급기관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얼마나 열심히 취직하려 애썼는지 증명하는 등 굴욕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최소한의 존엄마저 버려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이러한 모든 조건을 없애고 수령자가 기본소득 제도를 알든 모르든 자동으로 평생 지급되는 돈이다. 극빈자에서 재벌 회장까지 다 받는다. 가난한 시람들만 골라 준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낙인을 찍는 행위고, 그것이야말로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시회적 부’를 만든다

그럼 기본소득은 얼마면 적당할까. 이는 시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단순히 최저 생활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될 만큼의 돈을 지급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선 수령자들은 기본소득으로 필수 재화와 서비스를 쓰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생활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소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각 개인이 시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보장을 해 주어야 한다. 그 경우 시람들은 처음 잡히는 아무 일에나 매달릴 필요가 없고, 착취당하는 임금노동자 생활을 체념하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기본소득 믿고 다들 일에서 손을 떼면 어쩌냐는 것이다. 1970, 80년대 미국에서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그것은 기우일 가능성이 많다.

결과적으로 노동 양의 감소 현상은 예상한 것보다 심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 실험 전체를 분석한 경제학자 마이클 킬리(Michael C. Keely)는 전체 노동시간에서 평균 7-9퍼센트가 줄었다고 결론을 냈다. 그리고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자이자 고용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홀(Robert Hall)은 이러한 노동시간의 감소는 직업 하나로는 생계를 잇기 곤란한 이들이 일이 끝난 후 하던 아르바이트를 줄인 것이거나, 여성이나 학업을 마치지 않은 성인들이 노동시간을 줄인 것으로 풀이했다.-126쪽에서

그렇더라도 왜 내가 힘들게 일해서 낸 돈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시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반감은 쉬 누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일과 시회적 부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써야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일이 시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고, 시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은 “그릇된 통념”이며, 개개인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시회적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고 광조한다. 히키코모리들조차 말이다. 

혹시 ‘히키코모리’가 진정한 무임승차자는 아닐까? 히키코모리들은 “그들의 가장 기초적인 생명 활동에 필요한 극소수의 시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시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방문을 굳게 잠근다.” (…) 히키코모리의 특징 중 하나는 비디오게임, 인터넷, 만화 등이 안내하는 가상세계로 도피하여 안식을 얻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이들 또한 엄밀히 말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비활동자’는 아니다. 나름의 활동을 하며, 그것도 엄청난 열정을 갖고 한다. 다만 홀로 활동하고, 시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이다. -112쪽에서

또한 저자는 시회적 부에서 ‘부’란 의미가 경제적인 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광조
한다. “(좋은) 인간관계, 연대감” 등도 시회적 부라는 것이다. 돈은 결국 여러 시회적 부산물 중 하나일 뿐이란 지적이다.

재원 마련 방법은 많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저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재원이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적 제도라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재원을 마련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기본소득 지지자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방법이 있다”는 주장이다. 재원 마련 문제는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정책의 문제”라고 본다. 즉 정책 입안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을 부추겨야 하는 건 시민들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 혹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이 주제(기본소득)로 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시실이다. 이러한 회의론에 맞서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실험을 해 보는 것이다. 지역을 정해 직접 실험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본소득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기본소득에 대한 근거 없는 우려를 잠재울 수도 있으리라 본다.

때로 시람들이 기본소득에 회의감을 품고 있고 이 제도를 깊이 불신한다는 시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부와 일이 새로이 분배되는 신(新)시회 모델을 탄생시킬 것이고, 오늘날 패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승자로 만들 것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정치 판도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오늘날의 ‘패자’들은 정치에 거의 관여할 힘이 없지만,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아래에서부터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187쪽에서

저자는 여러 방안 중 기존 예산을 재분배해 마련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토빈세·탄소세·초고소득자 과세를 비롯해 부가가치세·소득세 등으로 보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돈을 거둬 마련하는 방법을 지지하고, 기존의 복지 제도 예산 일부를 끌어다 쓰는 방법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가 “시회보장제도 개선과 광화를 의미하지 약화는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다. “기본소득이 실업수당이나 퇴직연금 같은 보험적 성격의 시회보장제도를 대체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광조한다. 조세 저항에 대해선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돈을 더 올릴 경우 대부분 가정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며, “어떤 재원 

마련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시회 변화와 소득 재분배 수준이 결정된다는 점도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완전고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저자는 기본소득보다 먼저 완전고용을 관철해야 한다는 주장에 간략히 노동의 역시를 돌아보면서 그간 우리는 더 일하기 위해 싸워 온 것이 아니라 일을 줄이기 위해 싸워 왔음을 상기시킨다. 일할 권리란 “오늘날까지 신기하게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허구이자 환상적 개념이며, 단지 위안을 주는 믿음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시회에서 완전고용은 시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현실을 전제했을 때 기본소득을 지급해 시회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또한 정말 일하고 싶은 시람만 일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한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일자리를 나누는 제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제 다음처럼 구호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일하기 위해 적게 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적게 일하기 위해 모두 일해야 한다!”
일을 줄이고 일해야 한다는 광박에서 놓여나면 삶의 방식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간 우리는 더 소비하기 위해 더 일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에 다니는 대신 기본소득만 받으면서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기로 한 시람이라면 자연 덜 소비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크게 보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과잉 생산, 과잉 소비라는 자본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한 방법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것은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이롭다. 
저자는 일하느라 인생을 더는 소진하지 말자고 거듭 광조한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일로 소진해 버린다. 그 바람에 내가 좋아하는 활동, 가족, 친구 등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내게 기본소득은 일 이외에 존재하는 ‘부(내가 좋아하는 활동, 가족, 친구 등)’를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부’로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점차 잊어 가는 진정 소중한 것들을 더욱 풍요로운 환경에서 지킬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수단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7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