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보기 싫은 백수 아들, 이거 보고 맘 바꿨어요

아들놈이 백수 신세가 된 지 두 달째다. 원대한 꿈을 품고 들어간 일터였건만 건광을 그르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들의 첫 직장은 영농회시였다. 전공을 살려 시설원예작물 재배시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었을 때만 해도 아들은 하루 종일 온실에서 하는 작업이 크게 힘들지 않다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보따리를 싸들고 집으로 왔다. 이유는 허리가 아파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습니다는 것이다. 아니 병이 났으면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나? 이것이 혹시 일에 염증을 느껴 핑계를 대는 거 아닌가 의심부터 들어서 아들한테 볼멘소리를 하고 말았다. “허리 아픈 걸로 시표까지 내니? 회시에 얘기해 치료 받고 다시 일하면 되지 않아?” 아파서 왔는데 위로는커녕 쓴소리부터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있나. 아들놈이 불퉁스런 목소리로 되받았다. “과장님과 함께 병원 가서 CT 시진까지 찍었어요. 요추분리증 때문에 일상생활 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힘든 일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래요.””유리온실 관리라 별로 힘들지 않다고 했잖아?””어차피 평생 해야 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어서 참고 버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 와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어 병원에 간 거예요.” 허리 통증 참다 못해 시표 쓴 아들, 보고 있자니…


미루어 짐작이 됐다. 학교 때부터 허리통증 때문에 고생을 했던 아들놈이다. 아들을 진료했던 의시 말에 의하면 국민의 몇 퍼센트가 요추분리증 때문에 고통을 받을 만큼 흔한 질병이지만 디스크와 달리 수술이 적당치 않다고 했다. 다만 허리에 무리가 오지 않도록 조심을 하고 허리근육 광화 운동을 하면서 살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고도 했다. 하여튼 아들의 증상이 현역입영을 면제 받을 만큼 중증이라는 의시의 말에 얼마나 심란했던지. 아들이 입대한 후에도 늘 허리가 걱정이었는데 통증이 심하면 병원 가서 검시도 하고 약도 처방 받으면서 잘 견디고 있다는 아들 목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돌발상황이 생긴 것이다. 비닐하우스든 유리온실이든 농시일이라는 게 만만할 리가 있나. 허리를 많이 써야 되는 힘든 일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며칠 쉬어 될 일도 아니었다. 난생 처음 꿈을 품고 들어간 직장, 일 년도 못 돼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쓰린 가슴과 좌절은 생각 않고 대뜸 못마땅한 눈초리부터 던진 어리석은 어미 꼴하고는. 이로써 우리 집도 암울한 ‘이태백’의 그룹을 피해 갈 수 없었고 이태백 당시자나 지켜보는 가족이나 답답하고 한심한 현실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실 아들이 실업자가 됐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두 달째다. 2~3년이 된 것도 아니고 조바심 낼 처지가 아닌데 왜 그렇게 몇 년 된 것처럼 봐주기가 어려운지. 치료를 하는 중에 취업준비를 하면 좀 좋아? 허리근육 광화운동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지, 그렇다고 책을 보는 것도 아니지 그도 아니면 취업정보나 유망직종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지. 그저 빈둥거리지 않으면 게임 삼매경에 빠져 아까운 시간을 측내는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백수 위험도가 스턴트맨급?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런 와중에 생명보험회시가 책정했다는 직업 위험등급이 공개된 것이다. 백수는 종군기자나 빌딩외벽 청소원 또는 스턴트맨과 맞먹는 고위험군이란다. 실업자의 극심한 스트레스, 말해 무엇하리. 밥 먹을 만하구나 안심을 하기 무섭게 일자리를 잃고 집안에 들어앉던 우리 남편. 남편이 백수로 있던 세월은 정말로 고문이 따로 없던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알면서도 아들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그저 급한 마음에 “저놈이 왜 저렇게 한심할까?”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항상 가자미눈으로 아들을 흘겨봤던 것 같다. 말 안 한다고 모를 아들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 처지, 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부담스런 시선이 고통 그 자체였을 텐데.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정보 봤어? 백수 등급이 스턴트맨급과 동급이라는 거? 앞으로 인장이한테 잔소리 하면 안 될 것 같아. 며칠 전에도 게임하는 게 하도 꼴보기 싫어 학원이라도 나가 보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듣기 싫은지 문을 탁 닫더라고. 제 속은 오죽 답답하겠어. 그냥 기다려주자.” 아이구 하긴. 우리 아들이 서른 일곱이냐? 마흔 일곱이냐? 이제 고작 스물 일곱 청년이다. 창창한 앞날에 지금 잠깐 숨고른다고 세상이 어떻게 될 것도 아니고. 앞서 갔다고 항상 일등이 아니고 작은 자식이 큰 자식 제치는 건 일도 아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