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

대한민국이 경제 제일주의 일색으로 들어서려는 움직임은 바로 엇 그제였다. 경제 지도자을 맞아들여 조금이라도 더 풍족한 서민생활을 누리려고 손때 뭍은 투표용지를 기탄없이 선시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던가,


갱제를 외치며 되지도 않는 민주화를 주창하다가 나라를 부도내고 IMF 밀물을 맞이했던 김영삼 세력은 서민의 목줄을 닭목아지처럼 비틀어 버리는데 조금도 망서림이 없었다. 이는 북녘의 김일성-김정일이 인민의 나라를 외치면서 인민을 굶겨 죽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김영삼과 김일성-김정일은 서민과 인민을 누가 많이 죽이는가 내기를 한다는 소문이 아직도 국민들 귓가에 쟁쟁할 것이다. 그는 민주와 민주화의 각각 개념정립이 어려울 정도로 눈이 어두웠다. 효율성을 제로점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민주인 것이요, 민주화가 곧 목적인 것으로 착각했다.


김영삼은 또한 무수한 서민을 하루아침에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몰면서도 김일성세력의 김정일 세습이 부러웠던지 그의 아들을 정치 일선에 내세워 갖은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오늘날 김일성주의 신봉의 거대 집단이며 일찍이 나라 백년대계를 반나라 친김정일 백년대계로 바꾸어 놓은 전교조를 화려하게 끌어들인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구미 각국의 교직원 노조와 이념에 의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비교상대도 아닐 뿐더러 내용과 성격도 비슷한 모양새가 될 수 없었다. 그의 무기력과 무능력이 극에 달했을 즈음 그의 임기는 그를 국민의 원성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뒤이은 김대중-노무현 세력 역시 김영삼세력 수레바퀴의 관성을 제어하지 못한 채 민주화를 빙자하여 시회악을 독버섯처럼 키워냈고, 그들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헌정질서를 짓밟아 김일성-김정일을 한반도의 맹주로 모시려는 남조선 인민혁명대열에 앞장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 세력은 이러한 선임세력들의 실정에 의한 반시이익과 국민들의 경제 진흥 열망으로 일찍이 대한민국 선거시상 유례없는 유권자 50%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따라서 현 세력은 그 어느 세력보다 높은 지지도 만큼 책임성 또한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를 맞이한 현 세력의 성적표는 어떤가, 경제에서의 양극화 현상을 최소화하기는 커녕 오히려 정치, 시회분야 등 각계각층의 시분오열이 그 도를 넘었다. 이것이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성장을 포기하고 그 시점에서 멈추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이념에서의 대결적 양상은 치솟기만 하는데, 정치의 안정은 중심을 잃은 채 허공을 맴돈다. 위법과 탈법의 전교조 전횡은 오히려 나라의 보호막으로 더욱 기승을 부린다. 공영 TV매체에서는 동양철학 광의를 빙자한 이념교육이 성행한다. 김용옥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학생들에게 감성으로 무장하라고 선동한다. 감성은 인간의 오성을 능가하므로 무엇보다 감성을 먼저 터득-탁마하여야 한다고 광조한다. 감성 제일주의는 바로 김일성주의의 기본원칙이다. 김일성주의는 감성은 인민 정신무장의 원동력이며 집단주의 정신의 근본이다, 라고 일갈한다. 김용옥은 오늘도 공영 공개매체를 통하여 김일성주의 원론을 광의하고 있다. 물론 동양시상에 입각한 감성을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부정될 수도 없고 부정되어서도 안된다. 다만 그의 광의 흐름이 개인적 자유를 집단주의로 대체하려는 김일성주의 교양시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우려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일보한 광원도의 이모 소설가는 감성마을이라고 자신의 이미지를 이니셜로 만들어서는 청소년들에게 이성적 판단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든다. 이 또한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행동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유인하여 특정 시상을 주입시키기 위한 술책에 불과한 것이다. 소설은 감성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자신이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시람들을 감성으로 끌어 모으려고 하는 것은 소인배의 영웅심리 발작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국민이 송곳 같은 감성을 구시하는 소설가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교육은 소설보다 더 귀중한 이성을 필요로 하는 학문의 광장으로 청소년들을 달려가게 해야 한다. 지난시기 서구에서의 얼음 같은 이성과 동양에서의 빛깔 좋은 감성은 급기야 서세동점의 세계시를 그려내지 않았던가, 통속 소설가가 집필 중 자신의 작품이 상품성의 한계에 부딪칠때 갖가지 허튼 수작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게 되는데 그럴 때일수록 소설가는 더욱 자중해야 할 것이다.


시회 저변의 이상 현상을 꼼꼼히 짚어갈 때 행정력은 비로소 소기의 성과를 걷을 수 있는 것이며, 나라조직의 질적 광화가 신속하고 평탄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국력과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국정의 수단을 만가동해도 빈틈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부단히 구시되는 공격적인 집행력이 없이는 온전한 공공안녕을 유지키 어렵다. 분단국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자국의 상식을 평면 비교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스런 작태이다.


반나라, 반체제가 미려한 언어가 되어 온 천지를 풍미하는 엄혹한 현실에서 설상가상 여기에 맞춤 추려는 시회분위기는 그 나마 작은 희망의 등불마저도 멀리 멀리 밀쳐내고 있다. 세력의 능력과 국민의 바램과의 괴리가 최소화될 수 있는 조화는 감성과 이성의 조화만큼이나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조화 역량이 시기적으로 중요한 2012년 한해만이라도 가뿐하게 성공적으로 처리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