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애인이니?

                                                                       콩트                                                                   네 애인이니?                                                                  두룡거사 작 ⓒ 연애 기간이 너무 길어서였을까.정말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란 말인가.용두가 최근에 회사에서 새로 맡은 프로젝트에 몰입한 나머지 회사일을 집에까지 갖고 오기는 했지만 꼭 그게원인 같지도 않았다. 결혼 3년차를 맞은 주리는 마음이 허전했다.연애할 적에는 주리가 원하면 하늘의 별도 따주고 동물원 숫사자의 황금빛 갈기도 벗겨 줄 것 같았던 용두였는데요즘들어 자신을 소 닭 보듯 하며 변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용두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다.여자의 직감이라는 것도 있지만 용두는 바람을 피울 위인은 아니었다.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용두의 일거수 일투족에”한눈 파는”정황은 FBI가 뒤져도 한 건도 나오지 않을남자라는 걸 주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속상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용두가 바람을 피우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차라리 다른 여자라도 생겨서 자기와 소원해진 것이라면유형의 공격(?)대상이나 있을 것이고 죽이든 살리든 어떻게 결딴내 볼 계제라도 될 터이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상황이라 이래저래 끌탕만 쌓였다. 주리는 평소 보지도 않던 신문을 마치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이 뚫어져라 읽어 보기 시작했다. — 부부간에도 적절한 긴장이 유지돼야 한다.부부간에 권태가 발생하는 데에는 긴장의 해이가 크게 작용한다.이제는 내 영역에 있다는 안심이 방심으로 변질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그러므로 부부간에도 남편-아내로서의 의무적,법리적,형식적 견고함의 관계보다는 상대를 자유인으로서의애인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간절하게 보는 치열함의 관계를 유지하게 될 때 성적 욕구와 쾌감은 훨씬상승될 것이다. — 주리는 신문을 덮으며 무릎을 쳤다.’바로 이런 거였구나!애인으로 만날 때에는 갈증 같은 게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는 거로구나.맞아,부부도애인처럼 살아야 돼!애인처럼 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해야 된다구!’남자라고는 용두밖에 모르는 주리였다.아무리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세상이라지만 주리는 용두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았다.어떻게든 흐트러진(?)용두의 마음을 잡아야 될 일이었다.주리는 머리를 썼다.용두가 전혀 모르는 한 다리 건너 친구인 다조에게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자기야,나하고 고보문고에 같이 가자.책 좀 고르려고 하는데 자기가 자문 좀 해 줘”주리의 갑작스런 부탁에 용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알았어.그 대신 서점만 갔다 오는 거야.나 시간 없어…회사 프로젝트가 시일이 촉박하다구…”하며 큰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대답하는 것이었다.주리는”용두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애써 참으며 용두를 극진히 모셨다(?). 고보문고에서 맞닥뜨린 주리와 다조는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쳤다.다조는 주리의 부탁을 받고 고보문고에 일부러 시간을 맞춰 나온 것이었다.”어머,다조야!오랜만이다!책 사러 온 거냐?””응,오랜만이네!애들 책 좀 몇 권 사 주려고…” 일면식도 없는 여자 앞에서 머쓱해진 용두가 다조한테 목례를 했다.이때를 놓칠세라 다조는 주리가 미리 부탁한 멘트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주리야,이 분은?네 애인이니?””호호호,얘는!이 사람이 내 애인같이 보이니?그렇게 샤프하게 보여?이 사람은 우리 남편이야!” 신문에서 본 것처럼 용두를 애인으로 보이게끔 만들어 용두로 하여금 성적 욕구를 분발시키려는 것이었다.결혼 생활에 안주해서 긴장감 하나 없이 사는 방전 상태의 멋대가리 없는 남편에서 긴장감 빵빵하고 불 같은사랑이 늘 충전돼 있는 멋진 애인으로 신분 변화를 시켜 주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무슨 알다가도 모를 시추에이션이람?흐뭇한 미소를 띨 줄 알았던 용두의 얼굴이 일순 굳어지는 것이 아닌가?게다가 발길까지 돌리는 것이었다.주리는 얼른 용두를 따라가서 붙잡았다.”이거 놓으라구,나 급한 일 좀 봐야 되니까 친구하고 놀다 오라구…””왜 그래?내 친구도 있는데 이게 무슨 매너야?””왜 그러냐구?내가 왜 그러는지 정말 알고 싶냐?네가 조신한 여자였다면 친구가 네 남편이니?하고 묻는 게정상 아냐?대뜸 날 애인으로 취급하는 건 뭐냐구?응,애인이랍시고 한두 남자 데리고 다닌 게 아닌 모양이지?네가 어떻게 행실을 하고 다녔길래 친구 입에서 그런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거냐구?네가 그런 여잔 줄몰랐다.그렇지 않아도 이번 회사 프로젝트 건만 마치면 내가 미안해서 같이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마음먹고있었는데…내가 멍청한 놈이지…에이,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용두가 사라져 버리고 우두커니 서 있던 주리의 시야에는 형형색색의 고보문고 서가들이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