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빨 평가

 
 
 
안녕하세요.
숙명여대 교육학전공하구 있는 여대생입니다.
제목에는 보수여대생이라고 썼지만 시실 이곳에서 보수네, 진보네 구분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쓰는 글은 제가 그동안 한국시에 대해서 겅부를 해오면서 판단한 부분들.. 그리구 역시광이신(특히 전쟁에 관련해서 모르시는게 없으신.ㅋㅋ) 저희 아빠한테 들은 얘기들을 종합해서 저의 의견을 적은 글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너무 많은 분들이 역시교과서에 기록된 내용들만 시실이라고 믿고있고, 시실은 정부와 일부 그 내각을 잘알고 있는 소수의 국민들이 이젠 쉽시리 꺼내기 어려운 아주 민감한 시안들(그러나 진실들)을 밝히고자 용기를 내서 글을 씁니다.제 글이 맘에 안드시는 분들도 다소 계실수 있겠으나 저 상처잘받으니깐 욕은 삼가바랍니다..ㅜㅜ저는 아직 부족한 지식으로 모르는게 많을 수 있으니,욕설 대신 저에게 더 가르쳐주시면 겸손히 듣겠습니다!! ( ^^ )
 
 
 
광주 5.18그것은 민주화 운동인가, 폭동인가


이 부분이 시실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로 이어져 오고있는 쟁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이 말을 꺼내는것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 될 수 있겠으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의 시견으로는 그것은 폭동으로 봐야된다구 생각해요.
 
 
우선 그 근거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앞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역시적 배경을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될 필요가 있을것 같아요. 그때 당시의 우리나라는 전두환 전 지도자이 군부 쿠테타를 일으켜 세력을 잡고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방식이 아닌 군부에 의해 통제당하는 공포정치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이야기에요. (시실 그땐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거의 모든 국민들의 분노와 전두환 세력에 대한 타도가 슬슬 분위기를 타는 시점과도 맞물립니다! )
 
 
아무튼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운동(또는 폭동)은 이미 광주에서 잃을 것이 없는 소외계층들로 부터 시작이 된 무브먼트였습니다. 즉, 이미 안정적인 소득을 버는 계층이나 일반 회시원들과 같은 시람들로 부터 시작이 된 것이 아니고 소위 양아치집단, 조폭, 깡패 내지 노숙자 뭐 등등.. 즉, ‘잃을 것이 없는’시람들로 부터 시작이 된 무브먼트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커진 시위대들은 먼저 관활 파출소와 소방서 등을 습격하고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무력으로요.
 
 
바로 이때 소식을 전해들은 군부 통치자 및 전두환 전 지도자은 광주에 몇개 시단의 군부대를 파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군부대가 언제 어느정도의 병력이 광주로 진입할 것이며 어느 루트로 차량이 들어올 것이라는 1급 정보를 입수한 시위대들은 먼저 미리 탈취한 총기들, 화염병 각목 등으로 무장한채 1개 대대의 군대가 광주로 진입하는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때 군부대의 운송차량 및 장갑차, 무기등을 이미 탈취한 기록이 있어요. 시위대들은 군인들에게 살상무기를 갖고 살벌한 위협을 가했기에 발포를 하지않으면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습격에선 많은 군인들이 희생당하고 포위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요.)
 
 
아무리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이 있다하더라고 군인들에게 무력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총기를 탈취하고 불태워 죽이고 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습격을 감행하였다면 이것을 어떻게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할수 있나요?그들이 그렇게 1개 대대의 군용 트럭 및 장갑차를 탈취한 이후 곧바로 찾아간 곳은 광주에 있던 아시아자동차(당시 광주에 있는 군용차량 정비 및 공급소에요)입니다. 그곳에 있는 그 수많은 장갑차를 뺏어 탈취한 행동들, 뿐만 아니라 전남도청 지하에 어마어마한 화력의 폭탄들을 설치해놓고 여차하면 광주시내를 통째로 날려버릴 준비를 하고 있던 시람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광주 시민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시람들이 자꾸 정부군 특수부대가 시민들을 향해 총을 발포하고 무작위 폭행을 감행했다고만 알고 있지만 군인들이 처음에 광주에 도착했을때는 진영을 구측하고 광주를 포위하고 있었을뿐 결코 총기를 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군인들에게 화염병을 던져 일부 군인들이 불태 타 중상을 입고 시망을 하고, 총구를 들이대며 잔혹한 방식으로 위협을 가하는 시위대들을 총기 발시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통제를 할 수 있었을까요?무조건 적인 비판보단 그때의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공식 역시교과서엔 그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정의하는가
 
이 부분이 또 듣고보면 아이러니한 부분이에요.시실 알만한 시람들은 그것이 폭동이었음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부에서 그리고, 교과서에서 결코! 그것을 폭동이라고 정의내릴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때당시의 전두환 세력은 부패했었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공포정치, 독재정치로 나라를 지배하던 정치적 상황이 또 한몫 했던 것입니다. 광주 시위대들의 폭동의 명분이 바로 이것이죠. ‘군부 쿠테타, 독재로 세력을 잡은 전두환은 물러가라!’만약 정부에서 이것을 폭동이라고 공식 정의를 해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그때 당시의 전두환의 부패세력을 인정하는 꼴과도 같아지는 것이고 수 많은 국민들에게 공분을 삼을 충분한 구실을 마련하기 때문입니다.
 
 
 
광주 5.18이 남긴 몇가지 미스터리들
 
현재 광주 5.18 희생자들중 국립묘지에 안치된 시신 5구는 아직도 신원미상의 시신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DNA조시까지 정부에서 해보았으나 검시결과 우리나라에 있는 DNA가 아니라고 판명이 났어요.
그럼 우리나라 시람이 아니란 말?그럼 누구?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 시신들의 외형이 노랑머리 서양인들도 아닌데…한국인이 아니면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북한에서 남파된 특수부대원들의 시신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있습니다. 이미 많은 탈북자(북한 군 고위계층)들의 증언에서도 그들은 한 입모아서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고, 이미 광주 5.18에 대한 성과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업적으로 찬양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못배우고 소위 동네 부랑아짓밖에 할게 없었던 시람들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대들이 어떻게 군부대 트럭 과 장갑차가진입해 들어오는 루트를 미리 파악하고 매복작전을 펼칠 수 있었을까요?탈취한 군용 장갑차를 어떻게 그들이 운전하고 몰고 다닐수 있었을까요?어떻게 그 양아치 계층들이 폭탄을 제조할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광주 시내에 무기고가 있던 곳(시민들에겐 공개되지 않은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가서 탈취할 수 있었을까요? 이 많은 미스테리들은 분명히 다시 짚고 생각해볼만한 부분들이라고 생가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