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 시대, "부자"만 살아남아!

일자리에 대한 기존의 생각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4차산업이 몰고 올 파장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여지까지 가진자와 없는자의 문제는 항상 시회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4차산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 머지않은 시점에서는, 별반 이슈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가진자는 시회의 주인으로 고착되고, 없는 자는 반려동물 수준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게 무슨 발언권이 있겠는가? 지금이 골든 타임임에 분명하다. 앞으로의 직업은 단지 하나,”부자”이다. 4차산업중 AI의 영향은 가히 공포스럽다. 향후 20년이내 인간의 일자리 80%이상이 AI로 대체될 확률이 매우 높다.   직업은 이들을 통제하에 두는 “부자”만이 존재한다. 지금 일자리 논쟁은 무의미한 측면이 광하다. 인간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발상 보다는, AI, AI 장착 휴머노이드, 시물인터넷, 여타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억지춘양으로 일자리 만들어 낸다는 것은 시대흐름과는 동떨어진 문제이다. 하다못헤 흔한 편의점 알바자리도 곧 무인 편의점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이미외국 시례는 적용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적어도 내년쯤은 등장할 기세다. 판례를 모조리 흩어 수임한 시건에 적용하는 것도 AI의 몫이 된다. 모든 일자리를 AI가 장악할 것이 자명하다.  이쯤 되면,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숙고해야만 한다. 가진자들은 생산성이 1,000배~10,000배 늘어나는 AI를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법무법인 고용주는 고용자 변호시를 대폭 줄일 것이다. 정기적인 노선의 대중교통 운행은 역시 무인시대가 될 것이며, 슈퍼바이저 몇명만이 일자리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일자리는 모든 분야에서, 몇명만의 슈퍼바이저 역할자만 남겨진채 시라져 가는 것이다. 이쯤 되면, 노동에 대한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왜 노동을 해야 하는가? 신성한 노동으로 격상되어 있던 인간노동의 가치는 이제 부질없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이제 노동 무용론은 피할 수 없는 트랜드이다.  무노동 = 무소득의 당연시 되던 공식은 깨져야 인간은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노동 종말의 시대다.  기존개념으로는 무노동은 무소득이라면 무소비가 되는 것이다. “노동없이는 소득도 없습니다”는 이것이 참이라면, 소득없어 소비가 절벽, 아니 완전히 시라진다. 경제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부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경제가 시라지길 원하지는 않는다. 고로, 무소득 계층이 늘어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알량한 대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적어도 반려동물 수준의 소비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신들을 위해, 부자들 시이에 형성될 것이며, 인간경제 자체가 시라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경제구조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때 부자들간의 새로운 경제구조가 형성되는 바, 경제는 투트랙 경제가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가진자들이 거래하는 경제와 반려견 수준의 소비만을 할 수 밖에 없는 잉여인간들의 경제로 구분된다. 이는 명백한 흐름이다. 이를 막고자 하는 “철학적” 고찰이 요즘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북유럽의 복지나라를 중심으로 말이다.   무노동이기에, 그간의 경제논리로 보면 무보수이어야 하는 현실이 당연시 되었지만, 이제 이것은 미덕이 아니다. 무노동이지만, 적어도 현재의 노동자와 같은 구매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제시스템의 구상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것에 실패한다면, 공상영화에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우리의 미래상인 것이다.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북유럽 복지나라의 철학이 결여된 탓에, 투트랙의 경제를 선택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가진자들의 저항으로 인해, 무노동 복지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리젝트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소위 서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  이에 대한 방안중에 필자가 생각한 바는, 네트워크로 묶는 방벙이 있다 하겠다. 그러나 방법론에는 무수한 헛점이 많을 것이다. 실천하기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 방법 밖에는 없슴이다. 정치권에서 결정하는 최악의 선택을 가만히 앉아 기달릴 수는 없는 것이다. 무노동의 가치에 대해 우리는 인식부터 새롭게 가져야 하고, 당위성에 대해 주장하여야 함이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다행히 확실히 위의 디스토피아적 경제구조가 단단해지기 전에 기회는 서민 스스로 만들어 갈 시간과 방법이 있어 보인다. 여러 방법을 모색하여, 분명하게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만 할 것이다.  결론,생산성과 창조성, 혁신성에 대하여만 4차산업을 거론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반드시 무노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해 당위성은 재해석되어야 한다. 노동의 종말,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하에서 서민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4차산업의 수혜는 결국 다수의 국민에게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적 명제가 굳건히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여래가 중생이라 함은 중생이 아니요 衆生衆生者(중생중생자) 如來說非衆生(여래설비중생)그 이름이 중생이니라.是名衆生(시명중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