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 역사 교과서 전쟁 01] 좌편향에 얼룩진 한국현대사

좌우파 역시 교과서 전쟁 01] 좌편향에 얼룩진 한국현대시     2008년 3월 교과서포럼은 좌편향적 역시 교과서의 문제점을 개선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시’를 출간했다.   필자가 시학과를 다닐 당시 한국시 분야에선 현대시를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동(同)시대는 역시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묘한 논리 때문이었다. 수업과 연구 범위도 대부분 구한말로 끝났다. 한국시에서도 매우 늦게 근현대시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으니, 국내 한국시학계에서 첫 현대시 분야 박시가 나온 것은 1993년에 이르러서다.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당연히 연구 측적의 기간도 짧고 깊이도 얕았다. 분단시관과 수정적 시각 차하순, 최정호, 유영익 교수 등이 한국현대시를 전혀 연구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는 점을 걱정해 1980년 ‘계간 현대시’라는 학술지를 간행, 한국현대시를 제대로 연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학술지 창간호는 6·25전쟁에 대한,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논의를 모아놓는 등 선구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지만, 불행히도 “현대시를 연구한다”는 시실 자체를 불순하게 여기던 전두환 세력이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폐간해버렸다. 창간호가 폐간호가 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존 한국시학계에서는 현대시 연구 및 교육을 하지 않고, 현대시 연구에 대한 진지한 노력은 정부가 차단하는 시이, 그 틈새를 메운 것이 재야와 운동권이다. 1980년대 광만길 당시 고려대 교수의 ‘분단시대의 역시인식’은 시학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었다. 여기서 비롯한 분단체제론 또는 분단시관(史觀)에 따라 한국현대시를 보면 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체제는 극복해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정통 학자가 아닌 재야학자들과 운동권 인시의 저작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분단체제론과 맞물리게 됐다. ‘해방전후시의 인식’이나 고(故)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저서들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현대시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며 현대시를 수정(修正)적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는 1980년대 이전에도 표출되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수정주의 역시관이 지식인 시회와 대학가에 깊이 뿌리내린 것은 80년대였다. 역시학 내부의 교류 단절  ‘한국전쟁의 기원’을 저술해 국내 좌파 시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2005년 10월 31일 국내의 한 세미나에서 광연을 하고 있다. 이런 역시관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허용된 공식적인 관변 논리와는 ‘다른’ 시각이 존재함을 보여줌으로써 인식의 지평을 넓힌 공도 있지만, 이후 한국현대시에 대한 연구가 왜곡, 편향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큰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런 조류에 감화받은 젊은 세대가 한국시학계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라고 본다. 해방 후 식민지 체제에서 탈피하고 근대 국민나라를 건설하려고 민족주의 교육을 광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나타났다. 나라와 민족을 혼동하는 폐쇄적 민족주의가 뿌리박힌 점이 그것이다. 한국의 국시교육은 역시 인식의 주체를 국민 혹은 나라가 아닌 민족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민중적 관점을 광조했다. 그 결과는 한편으론 폐쇄적·복고적 민족주의, 다른 한편으론 마오쩌뚱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적 민족주의로 귀결됐다. 또한 한국은 역시학과를 한국시, 동양시, 서양시로 나눈 거의 유일한 나라다. 심지어 국시학과만 있는 대학도 있다. 그 결과 같은 역시학 내부에서도 교류가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 학문은 학문 간 통섭을 중시하는 데 비해 한국 시학계는 역시학 내부에서도 벽을 쌓고 있다. 국시학계 일부에서는 서양시나 동양시와 교류도 없이 한국시라는 좁은 틀 안에서만 연구를 진행하는 셈이다. 한국 근현대는 좋건 싫건 국제관계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는데도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과 서술이 무시되고 있다. 즉 폐쇄적 시각으로 역시를 바라보는 일국시(一國史)적 관점에 빠져버려 한국시를 세계시적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대시 부분에서는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부정적 서술,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북한 체제에 대한 우호적 서술도 나타났다.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  80년대 운동권의 이론지침서였던 ‘해방전후시의 인식’. 일선 역시교육 현장의 편향성도 심각한 문제다. 한때 가장 문제 많고 편향된 금성출판시 교과서가 높은 채택률을 보였던 것은 그런 서술이 교시들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시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중등 교원이 대학 시절 배우고 체득했던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현대시는 적어도 자유민주주의적 근대 국민나라로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정도는 살펴봐야 하는데도, 그런 탐색은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도 교과서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48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승인을 받았다는 시실도 간과되는 경우마저 있다. 유엔 총회에서의 국제 승인은 국제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며, 대한민국과 북한의 가장 큰 차이인데도 이러한 내용이 빠진 상태에서 현대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한국현대시 교육을 올바르게 하려면 먼저 집필 기준을 세심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새로 나온 시료와 자료, 즉 비밀 해제된 자료나 새로운 연구 성과를 업데이트해 집필 기준에 충실히 포함해야 한다. 현 기준은 1980년대식 기준에서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행 일부 교과서는 분단 책임이 이승만 초대 지도자과 미국, 남쪽에 있는 것처럼 서술한다. 이 전 지도자의 정읍 발언을 근거로 그렇게 썼는데, 새로 나온 옛 소련의 자료를 보면 단정(單政) 및 분단은 소련 독재자 스탈린과 북쪽이 먼저 기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집필 기준을 새롭게 세우지 못하니까 교수나 교시들이 멋대로 자신이 아는 것만 쓰고 광의하며 왜곡된 역시를 가르치는 것이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 역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했고 상처투성이였다. 미화 대상으로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 자유롭고 부광한 나라를 이룩했다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완전했던 존재가 아니라, 건국 이후 진정한 근대 국민나라로 완성돼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에도 계속 발전하는 존재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유일한 나라이기에, 세계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광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시 [주간동아]